글_김상곤
부산 해운대 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백사장의 해수욕장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외도 놀거리나 볼거리가 너무나 많다. 우선 놀거리로는 요즘 핫한 4.8km의 옛 철도시설을 이용하여 해안 절경을 볼 수 있게 한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스카이 캡슐 해변열차가 있다. 또 해운대 앞바다와 오륙도를 돌아보는 해운대 관광유람선을 타는 재미도 있다. 볼거리를 찾는다면 해운대 동백섬의 명물인 누리마루APEC하우스를 꼽을 수 있고, ‘해운대’란 이름을 남기게 한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있는 동백섬의 정상을 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해운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어상이다. 이 인어상은 1974년 5월에 처음 동백섬 끝부분에 설치하였으나 1987년 7월 태풍 셀마로 하체와 오른쪽 팔이 유실되어 부득이 철거하여 현재 부산박물관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뒤 1989년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다시 부산시에서 인어상을 만들어 세웠는데,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게 전에 있었던 자리에서 백사장 쪽으로 앞당겨 웨스틴 조선 부산 호텔동쪽 100m 지점의 높은 바위에 설치되어 있다. 길이는 2.6m 높이는 2.5m 몸무게 4톤의 청동 좌상이다. 실제 사람보다는 좀 큰 편이다. 이 인어상은 전설 속의 황옥공주 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름에서인지 또는 속치마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쳤다는 등의 설화에선지는 모르지만, 일설에 의하면 야유타국의 공주로 대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허황후라고도 한다. 이 동상은 전설 내용에 따라 황옥을 가슴에 안고 있는 모양이나 머리모양이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무튼 이 동상에는 전설이 있다. 아득한 옛날 동백섬을 지배하던 무궁 나라 ‘은혜왕’이 바다 건너 ‘나란다’라는 나라의 황옥공주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다. 이 ‘나란다’라는 나라의 사람들은 바닷속에 있는 수정 나라의 후예들로 몸 끝에 고기 지느러미가 있어 옷 속에 감추고 다녔다고 한다. 황옥공주 역시 옷 속에 지느러미를 감추고 다녔으나 결혼 후 속치마를 벗어 산신령에게 바쳐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앓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준, 고향이 그리우면 달 밝은 날 보라는 황옥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 비친 고국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다 갑자기 시집오기 전의 모습으로 변하였고, 다시 바다 속을 마음껏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동백섬 앞 바다에 인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인어란 생명체가 정말로 있었을까? 그러나 이 인어상은 그 실체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반인 반어는 있을 수 없는 상상의 동물이라고들 하고, 또한 인어의 모델은 튜공이라는 설까지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전설의 인어상들이 각지에서 세워졌을까? 아마도 이 인어상들 모두가 해운대와 같은 전설을 간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원시시대에 바다는 미개척 상상의 세계였기에 인어란 동물을 상상했기 때문이었을까.
이 인어상은 비단 해운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천 장봉도에도 있고 춘천의 의암호에도 있다. 제주도 우도, 목포 대반동, 후포항, 심지어 서울 한강공원에도 인어상이 설치되어 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해운대 인어상과 장봉도 인어상은 직접 인어를 봤다는 전설이 전해져왔다고 하지만 그 외는 대개가 관광 상품으로 만든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어상일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왜 다들 외롭고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함일까?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하다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는 유럽의 그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사람들의 감성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학작품은 이렇게 사회를 정화하고 인간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를 이용하여 인어상에 감성을 입힌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제 이 인어상도 과학의 발달과 감정의 메마름으로 점점 변형되어 이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는 지역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이 인어상은 더 이상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하는 매개체가 아닌 그저 관광자원의 볼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인가.
1977년, 태풍으로 내물치마을이 전부 쓸려갔을 때 이 마을에서 물질을 하고 살던 처녀가 결혼을 약속한 총각이 있었는데 조업을 나갔다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삼 년 동안 바닷가 갯바위에 앉아 기다리다 숨졌다고 한다. 이에 마을 주민들이 죽어서라도 사랑을 이루게 해주자는 애틋한 뜻을 모아 연인 인어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어상이 아니라 전설의 조형물일 뿐이다. 실제 인어와 연관된 상상의 인어상은 해운대 인어상과 인천 장봉도 외는 인어상이라고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동화를 쓰는 사람들이나 아동들이 동상을 보며 상상을 나래를 펼 수 있길 바란다.
*이 기사는 Closer 1호 14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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